
"수십 년 간 지나다니면서 봐왔던 낡은 동대문운동장 대신 색다른 건물이 들어서니까 시야가 확 트이고 마치 새로운 동네에 온 것 같은 신선한 기분이네요. 과거의 성곽과 미래 건물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관광명소가 될 것 같습니다."
동대문운동장을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한 학생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독특한 모습을 바라보며 찬사를 보냈다. 서울 한 복판에 과거와 근현대사, 미래를 함께 엿볼 수 있는 색다른 장소가 마련된 것이다.

지난 2003년부터 수명을 다한 동대문운동장이 지난 2008년 전면 철거되고 그 자리에 복합문화공원이 조성돼 지난 27일 그 첫 선을 보였다.
이번에 개장한 공원은 조선시대 당시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서울성곽(265mㆍ8천30㎡)과 동대문역사관(1천313㎡), 동대문유구전시장(4천460㎡), 고교야구와 축구의 메카였던 동대문운동장기념관(339㎡), 이벤트홀(2천58㎡), 디자인갤러리(400㎡) 등으로 구성됐다.
당초 첫 설계 발표 당시만 해도 서울시 측은 이 공간을 녹지와 문화이벤트 중심의 단순 공원으로 계획했다.
그러나 철거 과정에서 다수의 문화재가 발굴되자 서울시는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한 건축 디자이너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자문을 받아 과거와 미래가 함께 교감하는 복합단지로 설계를 변경했다.
이에 따라 철거 당시 조선시대 동대문을 둘러싸던 서울성곽이 발굴됐던 142m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성곽이 멸실된 123m 구간도 지적도에 표시된 추정 성곽선에 따라 흔적을 표시했다.

도성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물을 빼기 위한 장치인 이간수문(二間水門)과 이번 발굴을 통해 최초로 확인된 방어시설인 치성(雉性) 1개소도 함께 복원했다.
특히 이번에 복원된 성곽은 태조, 세종, 숙종 이후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시대에 지어진 것을 모두 그대로 복원해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건축기법 등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게 만들어 역사적 가치를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는 또 야구장 및 축구장 부지에서 발견된 하도감터(별기군의 훈련 장소)를 복원하고 조선 전기에서 후기 건물지 유구 44기와 조선백자와 분청사기 등 주요유물 1천여 점을 발굴해 동대문역사관에 전시했다.

더불어 프로스포츠가 활성화되기 전 학원스포츠의 메카였던 동대문운동장의 야간 경기용 조명탑 2개와 성화대도 그대로 남겨 과거 향수를 기억하고 있는 40대 이상 시민들의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서울 중심부에서 경험하는 과거와 미래의 교감
공원 부지를 돌아보며 상당수의 시민들은 독특하게 생긴 미래형 건물과 조선시대 원형을 그대로 복원한 성곽이 이뤄내는 묘한 조화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는 우리의 전통 문화가 세계적 디자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며 한 시민은 말했다.
실제 공원 내부에 조성된 4개 건물은 마치 건축물 전문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최첨단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과거 유물인 성곽과 오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공원 내에 만들어진 4개의 건축물은 미래도시를 보는 듯한 3차원 곡선형 구조로 공사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서울시 측은 토로했다.
서울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평면도가 아닌 현치도(실제 치수로 그린 전개도)에 따라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형틀을 제작했고 BIM(Building Information Management) 기법을 도입, 설계상 오류를 수정하는 등 최첨단 건축기술을 활용했다.
또 동대문역사관과 동대문운동장기념관에서 전체 유적 복원도를 3D로 제작·상영하는 등 첨단기술을 통해 과거의 삶을 실감나게 엿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미래와 과거의 교감을 이뤄내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7일 개막식에서 "아직 절반의 성공이지만 2년 뒤 이 자리에 디자인플라자가 완성되면 600년 역사와 최첨단 공법이 어우러진 공간이 만들어진다"며 "600년의 과거와 초현실적 미래가 시간을 뛰어넘어 공존하는 이 특별한 공간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도시로 만드는 기반으로 삼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창근 서울시 문화시설사업단장도 이번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조성에 앞서 "'과거와 미래의 만남', '회복과 창조'라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주요 콘셉트를 가시화하는 전기를 마련하고 역사문화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연중 무휴로 24시간 무료로 개방된다. 동대문역사·운동장기념관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설날과 추석을 제외한 모든 날 시민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옛 모습 찾아가는 '서울성곽'
한편, 서울시는 서울성곽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복원되지 못했던 서대문(돈의문)을 원형대로 복원할 것이라는 '서울성곽 중장기 종합정비 기본계획'을 지난 21일 발표했다.
돈의문은 남대문(숭례문)과 동대문(흥인지문), 숙정문(북문)과 함께 서울 4대문 중 하나였지만 지난 1915년 조선총독부가 전차 궤도 건설을 위해 철거한 뒤 아직까지 복원되지 못했었다.
서울시는 조선시대 4대문 복원의 완성을 위해 위해 2013년까지 1천477억원을 들여 돈의문의 옛 터인 강북삼성병원 앞 정동사거리 일대에 복원하는 '돈의문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돈의문 사업이 완성되면 오는 2013년 서울시내 4대문이 모두 지난 조선시대 당시 원형으로 복원돼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